* 일본 버블경제 시절 때의 인기 쇼와돌과 일개 샐러리맨의 이야기를 담은 썰입니다. AU입니다!! 아이들은 훌륭한 히어로의 유정란... 재미로만...

 

일본 버블경제가 도래하던 때, 부동산이니 건물이니 사람들이 말 다투는 트렌디한 때에도 명문대 출신, 언제나 쫙쫙 다린 정장을 고집하는 샐러리맨 미도리야 이즈쿠는 여느 때처럼 직장 상사와의 술자리에 휘말릴 뻔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오사카 출신인 인상이 은은하게 구겨진 사장님의 특제 야끼소바와 더불어 시원한 캔맥주가 당겼기에 아슬아슬히 정시 퇴근에 성공했죠.

 

해가 곧 짧아지는 계절에서, 어둑어둑한 밤하늘에 반짝거리는 네온 사인들, 번쩍이는 건물의 화려한 조명 아래서 사람들이 바글대는 지옥의 중앙. 손, 다리 겨우 빼낸 채 힙겹게 뛰어다니는 그 남자. (야끼소바가 식어버리면 안 되니까요)

 

분명히 춥다고 느꼈는데 땀이 나는 건 왜일까요. 불어오는 바람에 축축하게 젖어버린 등판을 말리기 위해 자켓을 벗고선 사치스레 꾸며놓은 전광판을 바라봅니다. 

 

땀이 이마에서부터 관자놀이, 관자놀이에서 턱끝. 그리고 땀방울이 야끼소바에 떨어지는 순간의 파동이 무척이나 크게 느껴진 건 전광판 속 어느 쇼와돌을 바라보느라 온 신경을 집중했기 때문이었을 걸요. 화면 속에 비춰지는 그 여자가 눈이 부시게 열정적이라, 그 여자가 자신과는 다른 값어치의 땀방울을 흩날리며 외치는 노랫소리라서, 결정적으로는 첫사랑이어서.

 

미도리야는 잠시동안 자신의 유년시절 일대기를 속독해봤고 공부밖에 없었던 지루한 제 인생 속에선 사랑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법하다라고 정의 내렸었는데, 이렇게 다시 변수가 생겨버려요. 어느 어중간한 계절 속 오후 7시 30분. 아야기누 히토시, 일명 히쨩의 팬이 되었습니다.

 

이후 히쨩에 관한 것들을 모조리 알아보고 확인해보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히쨩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다 갔구요, 유능한 팬이 되는 길을 차츰차츰 걸어나가곤 했지만 삶의 나침반과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어요. 현재 미도리야가 거주하고 있는 곳은 일본 도쿄의 중심부였지만, 윈터 페스타니 뭐니 겨울 맞이 콘서트를 홋카이도에서 개최한다 하면 월차를 내서라도 달려갔지요.

 

히쨩이 친숙하고도 신비스런 행성인 달이라면, 미도리야는 그 여자를 탐사하는 초보 우주비행사. 달을 직접 봤다는 기쁨에 심취해 답답했던 우주복을 벗어던지는 미친 짓을 벌일 수 있는 위태로운 우주비행사.

 

마구마구 닥치는 대로 사뒀던 히쨩의 굿즈를 보관하기 위해 자신의 자금을 털어 개인적인 오피스텔 하나도 장만했습니다. 원체 저금만이 살길이라며 인생의 모토로 설정해뒀던 미도리야를 180도 변하게 만들었다는 걸 히쨩은 알고나 있을까요.

 

악수회라던지 많이도 갔었습니다. 초 인기 쇼와돌, 히쨩은 처음엔 가식적인 웃음만을 지니고 대했지만 자신의 스케쥴이 어떻든 간에 늘 찾아와 식단 조절을 위해 늘 굶주렸던 자신을 위해 약간의 간식과 정성 담긴 편지를 전해주는 미도리야가 익숙해졌고, 이제는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걱정부터 되는 지경까지 이르었습니다. 엄청난 발전이죠?

 

하지만, 언제나 미도리야에게도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쾌활한 모습을 보였던 초 인기 쇼와돌 히쨩에게도 이면은 있었어요.

 

처음에야, 사람들에게, 모두에게 사랑받는 직종이라니 더 없이 좋겠다. 싶었던 철딱서니 없는 시절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면 쏠릴 수록 자신에게 더더욱 자극적인 모습을 요구해오는 기획사와 늘어나는 안티들, 연예계에서의 이슈가 되는 둥 여러가지 스캔들에 휩싸이기 시작했으며 히쨩의 스트레스는 히쨩을 좀먹어가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더더욱 돋보이게 해줄 것이라며 멋대로 잡았던 접대 자리에는 그 시절 대기업들의 고위 간부, 현 시대의 유명인사들이 줄줄이 모여 있었고, 일개 쇼와돌 따위가 비싸게 군다는 둥 여러 폭언들을 들으며 겁탈도 당하는 최악의 나날들이 번져가고요. 더불어 팀 내 멤버들에게도 아주 심한 이지메를 당하던 때라 자신에게 탈출구는 없다.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나날이 늘어가는 상처에 밴드나 붕대를 감고 올 때도 있었고, 짓무른 상처에 메이크업을 덧대 극심한 고통을 줄 때도 많았지만 히쨩은 버텼습니다. 미도리야 같은 히쨩의 팬들은 사랑스럽고, 열정적이며, 꿈으로 불타오르는 긍정적인 에너지만을 보고 좋아하는 거니까. 이마저도 없으면 자신의 존재가 부정되어 버리니까.

 

히쨩은 미도리야에게 처음으로 화를 냈었습니다. 가슴 쪽의 화상흉을 보고선 악수회 도중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해요.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고 싶어요. 란 발언을 들은 것이 화근이었어요.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발언에 감동 받아 고맙다고 하지 못할 망정 화를 내버렸습니다. 얼굴이 일그러지며 손은 차가워지고 어깨를 떨며 냉담히 거짓말 하지 마. 라 전했던 말은 순간 미도리야에게 엄청난 비애를 느끼게끔 했어요.

 

허나 곧바로 너스레를 떨며 자신이 곧 드라마에 출연할 예정이라 능청스레 넘어가던 히쨩에 약간의 안도감은 느꼈지만,

 

그때부터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죠.

 

문제의 악수회가 지난 며칠 뒤 신문 기사 1면으로 장식된 이야기는 바로 초 인기 쇼와돌 히쨩의 임신 스캔들이었으며, 자신이 탐사하던 행성이 점점 붕괴되고 있다는 느낌을 들었던 미도리야는 곧바로 회사에 사직서를 내버립니다.

 

아무래도 히쨩을 찾아야겠다며 고뇌하던 미도리야는 자신에게 히쨩이 무슨 존재인지 골똘히 생각하게 됩니다. 팬심과 진한 사랑 그 사이에서 무언가 변태하고 있는 떨리는 그 감정을 히쨩에게 전하고 싶었지만ㅡ 자신은 일개 샐러리맨(이젠 더이상 샐러리맨도 아니죠)이고 히쨩은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인사였으니. 미도리야의 시간은 그 상황에서 멈춰버렸고, 히쨩의 고독한 사투는 계속됐습니다.

 

하다하다 자신이 임신을 했다는 둥 괴상한 스캔들에 휩싸이게 되자, 히쨩은 같은 팀의 멤버들에게 우리들의 위상을 더렵혔다는 이유로 극심한 구타를 당하고, 흉측한 몰골이 된 자신이 유일히 믿고 있었던 스폰서에게도 더이상 당신의 얼굴과 몸은 아름답지 않다며, 히쨩의 이름은 버리는 게 좋을 것이라며 버림받게 됩니다. 그 후 신문에선 히쨩의 소속사였던 JP 엔터가 히쨩에게 소송을 걸 예정이라며, JP 엔터가 저질렀던 모든 만행들을 히쨩에게 덮어씌웠습니다.

 

이젠 초 인기 아이돌 히쨩이 아닌 억대의 빚이 생긴 아야기누 히토시로서

 

마치 거품처럼 사라진

 

아야기누 히토시는 뭘까?

 

나는 뭐지? 나는 무슨 사람인거지? 

 

나는 누구지?나는 누구지?나는 누구지?나는 누구지?나는 누구지?나는 누구지?나는 누구지?나는 누구지?나는 누구지?나는 누구지?나는 누구지?나는 누구지?나는 누구지?나는 누구지?나는 누구지?나는 누구지?나는 누구지?

 

 

 

 

 

 

 

 

 

 

 

 

 

 

 

 

 

 

 

 

 

 

 

 

정체성 혼란이 닥치자 늘 먹었던 항생제와 수면 유도제, 갖가지 약을 손에 잡히는 대로 입에 쑤셔넣고는 정말 먹고 싶었던 기름진 것들을 위장에 보관하기 시작합니다. 갑작스런 자극에 환각이 보이며 코로도, 입으로도 토사물을 내뿜으며 엉망진창이 된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확인하며 괴성을 지릅니다. 망치를 사용해 거울들을 깨부수며 미친듯이 포효하다, 끝내는 정신을 차리며 단장하기 시작합니다.

 

못생기게 잘린 머리를 커버하기 위한 부드러운 가발을 착용하고, 말라 비틀어져 더러운 것이 묻은 입술은 대강 붉게 물들여진 립스틱으로 가려줍니다. 칙칙한 눈매는 인조 속눈썹과 아이섀도를 이용해 화사하게 연출하며 핏기 없는 피부를 차가운 파운데이션으로 위장합니다. 

 

마지막으론 제일 좋아했던 무대 의상을 꺼내 입으며 활짝 웃고선 미친듯이 춤을 추다 자살합니다.

 

 

 

 

 

 

 

 

 

 

 

 

 

 

 

 

 

 

 

 

 

세간에선 갑작스러웠지만 미도리야에게는 갑작스럽지 않았던 히쨩의 죽음은 수도 없이 슬펐습니다. 자신이 지켜내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자신이 능력 없는 사람임에 불과하다는 모멸감, 한 번만이라도 히쨩을 보고 싶다는 이기심에 휩싸여 몇 년 동안, 쫙쫙 다린 정장만을 고집하던 엘리트 샐러리맨과는 작별을 했습니다.

 

씻지 않았던 몸을 긁어대며 여느 때처럼 히쨩과의 추억을 돌아보던 때에 휴지통 안에 들어가 있는 다이어리를 발견했고, 그 다이어리 표면으로 보였던 삐죽 튀어나온 흰 것에 이목이 집중됩니다. 목을 우드득 거리며 쪼그려 앉아 다이어리를 살펴보다 익숙했던 사진을 봤습니다.

 

약간은 야시시한 옷을 입었지만 얼굴 만큼은 열정 가득이었던 전성기의 초 인기 아이돌 히쨩의 모습과 부끄러운 듯 눈을 크게 뜨고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큰 손을 무릎에 올려 어색하게 웃어올린 엘리트 샐러리맨 미도리야의 모습이 드러나는 사진을요. 

 

히쨩의 싸인이 곱게 적혀있던 곳에는 조그만한 코멘트가 달려있었습니다.

ㅡ 늘 나를 보러 와줘서 고마워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초보 우주 비행사였던 자신이 처음으로 탐사했던 행성인 달의 이면을 보지 못한 채 귀환해야 했던 것이 괴로웠고, 한심했지만 새로운 출발을 위해 기념으로 찍어뒀던 열정 담은 사진들은 접어두고 새로운 우주복을 꺼내 로켓에는 연료를 채우기 시작합니다.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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